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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디어 리뷰

네덜란드 미술 투어, 렘브란트 투어 라틴학교 가면 이건 꼭!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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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미술 투어
빛의 마법사 렘브란트

네덜란드 고품격 미술 투어를 간다면 렘브란트 투어 어떠신가요? 미술을 잘 알지 못하지만 보는건 좋아해서 톡파원 25시에서 미술 관련 방송을 하면 챙겨 보곤 하는데요. 이번에 빛의 마술사 렘브란트 반 레인의 이야기를 다시 돌려보기 하다가 기록해두고자 정리해보았어요. (사진 출처. 톡파원 25시)

17세기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 역사화, 초상화, 풍경화 등 다양화 주제를 다룬 빛의 마술사라고 불리우는데요. 데절란드 친구에게 물어보면 고흐보다 더 자랑스러운 화가를 렘브란트라고 꼽을 정도라고 해요!

고흐다 내 인생의 유일한 스승은 렘브란트라는 말을 했을 정도라니 그가 얼마나 렘브란트를 존경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정식 화가가 되기 위해 일련의 단계가 필요하다고해요. 수습공->직인->장인 순으로 보통 마스터가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게는 15년 길게는 18년 정도인데 렘브란트는 이 과정을 약 6년 만에 수료를 했다고 합니다.

렘브란트는 19살에 수료하고 공방을 오픈했고 20대 초반엔 제자까지 양성했을 정도로 말도 안되는 천재 중에 천재!

라익스 뮤지엄

https://maps.app.goo.gl/7eqDr39F7KiZma757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 Museumstraat 1, 1071 XX Amsterdam, 네덜란드

★★★★★ · 미술관

www.google.co.kr

렘브란트를 만나기 위해 찾아야 할 곳 중 한 곳은 바로 라익스 뮤지엄!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수많은 작품을 전지 중인 라익스 뮤지엄에도 렘브란트의 작품이 있어요.

수많은 작품 중 가장 먼저 보셔야 할 그림은 렘브란트의 '자화상' 이에요. 1628년 20대 초반에 그린 자화상. 명암이 도드라지는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자세히 보면 빛의 방향에 따라 선명한 한쪽 얼굴과 그림자가 진 반대쪽 얼굴을 보실 수 있는데요.

인물의 전면 45도에서 얼굴에 음영을 주는 조명 기법으로 얼굴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효과라고 합니다. 영화에서도 많이 사용하는 라이팅기법이기도 하다는 사실. :)

렘브란트 자화상을 보면 그의 인생을 엿볼 수 있는데요. 전성기를 누렸던 청년시절과 힘든 시기를 겪고 무너져 가던 중년, 외롭고 쓸쓸했던 말년까 그는 자화상을 통해 자신의 굴곡진 인생을 담았다고 합니다.

50대가 된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파산 후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시기에요. 자화상을 보면 히브리어로 적힌 성서를 들고 있고 가슴에는 칼을 품고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에 등장하는 성인 중에 유일하게 검을 상징물로 사용했던 사도바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자화상을 그렸을 당시에 모든 것이 무너지고 인정받지 못했던 시기였는데요 자기 자신을 사도 바울에 빗대어 언젠가는 사람들이 내 작품을 이해하지 않을까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그렸을거라고 추측한답니다 :)

다음으로 보실 작품은 야경이라고 불리우는 그림이에요. 이 그림의 원래 이름은 "프란스 반닝 코크 대장과 빌럼 반 루이텐부르크의 민병대"였지만 야간 풍경을 그린 거라 생각하여 야경으로 불리운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야간 출정이아닌 실내에서의 모습이라고 해요. 좌측 창으로 들어오는 빛을 보시면 알 수 있는데요!

이 그림이 완성되고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서 바니시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때가 붇고 어두워져 버렸죠.  그렇게 <야경>이라 불리며 고착화되어버려 아직까지도 야경이라고 불린다고 해요.

이 작품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하나 더 있는데요!  검은색 옷에 붉은 띠를 두른 사람이 반닝코크대장, 그 옆이 빌럼 반 루이텐부르크 부대을 중심으로 두 사람이 이끄는 자경단 18명의 요청으로 이 그림이 그려졌다고 해요.

18명이 똑같이 돈을 냈지만 두 사람만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거죠.ㅎ 나머지 주변 인물들은 보이지 않는데 돈은 똑같이 냈으니 불만이 많이 나왔겠죠~?

17세기 길드 체제가 성행했던 네덜란드는 길드 회원의 모습을 그려 걸어두는게 유행이었다고 해요. 결혼식 기념사진을 찍듯이 집단 초상화를 그려 걸어두었던 거죠.

당시 스페인과 독립전쟁 중이던 네덜란드. 자발적으로 나라를 지키고자 힘을 모았던 민병대의 모습을 역사화처럼 그려보고 싶었던 렘브란트는 누구하나 서운하지 않게 비슷한 크기로 그리기 보다, 역동성을 살려 민병대의 모습을 그렸던 것이랍니다.

다음으로 볼 작품은 렘브란트의 포목상 조합의 이사들이에요. 이 작품은 길드 회의실 벽난로에 전시하기 위해 의뢰된 작품으로 렘브란트는 작품의 위치를 고려해 위에서 내려가보듯 그렸다고 합니다.

드바그

https://maps.app.goo.gl/JqtFrBJQeNxZ6xf29

 

Waag · Nieuwmarkt 4, 1012 CR Amsterdam, 네덜란드

★★★★☆ · 음식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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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바그는 작품 내 해부학 강의가 실제로 열렸던 곳으로 그 당시에는 입장료를 내고 단체 관람할 정도의 문화생활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돈을 내고 뮤지컬을 보는 것 같은. 해부학을 보는것은 그 당시 영위하고 있는 문화생활을 뽐내는 행위!

1632년 한 작품을 통해 부와 명예를 얻게 된 렘브란트. 그 작품은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라는 그림인데요. 이 그림은 외과 의사 길드에 전시하기 위해 렘브란트에게 의뢰되었던 작품이에요.

빛과 어둠을 활용한 독창적인 표현 방식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던 그림이라고 합니다. 이 작품을 통해 암스테르담에서 최고의 화가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고 해요. 이 후 렘브란트는 끊임없이 집단 초상화의 의뢰를 받게 되었답니다.

이 작품이 유명해지면서 사스키아와 결혼한 렘브란트. 

라틴학교

https://maps.app.goo.gl/5Brzvn41q3Ut7Y5TA

 

Latijnse school · Lokhorststraat 16, 2311 TA Leiden, 네덜란드

★★★★☆ · 역사적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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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팬들이라면 꼭 들린다는 라틴학교. 라틴학교는 암스테르담에서 차로 40분 거리에 있답니다. 이 곳에서 렘브란트는 언어와 역사를 공부한 곳이라고 해요. 라틴학교를 중퇴하고 그림에 전념했던 렘브란트.

라틴학교는 들어갈 수 없지만 이 곳에 가면 특별한 경험을 하실 수 있는데요! 바로 렘브란트가 초상화를 그려준다고 해요. :) 아니 어떻게?

프레임에 맞춰 얼굴을 대고 창문을 빤~히 쳐다보면 그림이 그려진다는 것! 그려진 그림은 레이던 시청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다운이 가능하답니다. :) 많은 사람들이 이 꿀잼을 모르고 있다고 하니 네덜란드 여행가시면 꼭! 들려보세요. 

렘브란드 하우스 박물관
입장료 : 25,000원

https://maps.app.goo.gl/5SFCbRAViXndzD5w5

 

Rembrandt House Museum · Jodenbreestraat 4, 1011 NK Amsterdam, 네덜란드

★★★★★ ·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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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하우스 박물관른 렘브란트가 1639년에서 1660년까지 살았던 집이에요. 미술상인 헨드릭 반 우일렌버그의 도움으로 렘브란트는 작품을 판매하게 되었고 귀족 신분인 사스키아와 결혼까지 하게 되죠.

결혼할 때 가져온 지참금도 있지만 그녀의 신분이 귀족이었던 만큼 귀족집단으로 신분이 상승되면스 렘브란트는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주변의 의심스러운 시선은 이었지만 렘브란트는 그녀를 사랑했단 증거로 많은 그녀의 초상화를 그립니다. 사스키아 초상화만 보아도 두 사람의 부부 금실을 알 수 있다고 해요. :)

렘브란트가 이 집을 구매할 당시 무려 17억원! 한국으로 치면 강남의 테헤란로 라고 합니다. 암스테르담 평균 집값의 무려 10배!

렘브란트 하우스 박물 관 안에는 미술품부터 동물 박제까지 다양한 종류의 희귀템들이 전시되어 있는데요. 이 소품들이 렘브란트를 쇠락의 길로 몰아넣은 과소비의 원인이라고 합니다.

소품을 모으는 데는 이유가 있었는데요. 당시 그림은 초상화, 역사화, 풍경화로 나뉠 수 있습니다. 그 중 최고는 역사화로 렘브란트는 역사화가를 꿈꿨다고 해요.  역사는 과거이야기로 재현할 소품이 필요했고, 그림을 위해 그는 소품을 모으기 시작한 거죠.

사치가 아닌 투자! 하지만 렘브란트의 진짜 문제는 희귀품 감정이 불가능하다는 것! 이 때문에 렘브란트 집 앞에는 매주 벼룩시장이 열렸다고 합니다. 렘브란트에게 물건을 팔기 위해. 이 과정에서 사기도 많이 당했다고 해요.

박물관 침실에는 사스키아 초상화가 있는데요. 렘브란트 비극은 사스키아가 죽고나서 시작됩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첫 아들과 두 딸이 있었는데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사망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날, 사스키아는 29세 나이로 아들 티투스를 두고 결핵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그녀가 떠나기 전 유언을 남겼는데요. " 렘브란트가 재혼을 하면 유산을 상속받을 수 없다." 이는 바로 아들 티투스 때문이라고 합니다. 재산관리인에게 남편에게 매달 돈을 나눠서 주라는 유언을 한 것이죠.

세상물정 모르는 렘브란트. 미래의 일을 알 수 없으니 남편과 아이를 위해 안전장치를 만든 것이요. 신탁처럼요. 유산을 한 번에 상속하지 않고 양육비처럼 분할로 지급해달라고 했던 겁니다.

그로부터 5년 후 티투스를 양육해 줄 유모를 고용하게 됩니다. 사스키아를 닮았던 헨드리케는 렘브란트에게 많은 도움을 주기도 했답니다. 렘브란트는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할 수 없어 사실혼 관계를 유지해 왔던 두 사람. 

그 당시 네덜란드는 칼뱅교 결혼 없는 동거는 종교적으로 비난의 대상이었기에 사회적으로 매장이 되어 버립니다. "렘브란트에게 그림 의뢰하면 안돼. 그림을 사서도 안돼" 이때부터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렘브란트.

수입은 줄어도 그의 습관은 변하지 않았던 거죠. 그렇게 렘브란트는 결국 파산에 이르고 힘든 말년을 보내게 됩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의 곁에는 헨드리케가 함께 했습니다. 죽음 후에도 두 사람은 함께 묻힙니다. 렘브란트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엿볼 수 있는 렘브란트 하우스 박물관.

네덜란드 미술투어 계획하신다면 고품격 렘브란트 투어 어떠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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