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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디어 리뷰

넷플릭스 다큐 추천 미켈란젤로 비하인드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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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다큐 추천
미켈란젤로

1년전 이맘때쯤 스타벅스에 갔다. 커피한 잔 하면서 뭘 볼까 고민하다가 넷플릭스에 있는 미켈란젤로를 재생시켰다.

미켈란젤로는 어렸을 때부터 종이와 벽에 그림을 그렸다. 그의 아버지 루도비코는 아들의 재능을 알아보고 거장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공방으로 아들을 보냈다. 그곳에서 훌륭하고 가치 있는 그림을 익히라며. 기를란다요 역시 머지않아 미켈란젤로의 재능을 알아봤고 아직 어린아이였던 그는 외쳤다. "이 꼬마 녀석이 나보다 더 훌륭하곤" 그의 나이 겨우 13살 때였다.

기를란다요는 미켈란젤로를 베르톨도에게 맡긴다. 도나텔로의 제자 베르톨도는 산 마르코 정원 소속이였고 이는 로렌초 데 메디치가 설립한 궁정 조각 학교로 재능 있는 젊은 화가와 조각가를 양성한 곳이었다.

메디치 가문의 지원을 받아 예술 활동을 하던 미켈란젤로. 그러던 어느날 후원자였던 로렌초가 사망하자 수도원에 들어가게 된다. 수도원에서 시신으로 인체 해부 공부를 하게 되고 이 경험이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라파엘레 추기경에게 자신의 능력을 선보일 바쿠스를 만들게 되고 이 일이 그의 이름을 알리게된 시발점이 된다.

(디오니소스의 빠진 사티로스, 바쿠스에게 빼앗은 포도송이에 미소 짓는 얼굴을 처박고 있는 석고상) 하지만 라파엘레 추기경은 그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의 능력을 알아본 야코포 추기경은 그에게 로마에서 가장 멋진 작품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한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피에타.
대리석을 어쩜 이리 우아하고 정교하게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단순하고 형태없는 돌덩이에 생명을 불어 넣은 석고상을 보면 탄식이 절로 나온다. 마리아의 옷깃에서 미켈란젤로의 이름이 각인되어 있다. 자신의 작품에 애정을 느낀 것이며 자기 작품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행동이였다. 이는 죽기 전 미완성으로 끝난 론다니니 피에타에서도 그가 얼마나 이 작품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이 후 로마를 떠나 피렌체로 돌아간 미켈란젤로. 그 곳에서 피렌체의 상징인 ‘다비드상’을 만들게 된다. 두칼레 궁전에 있는 홀에 프레스코화 의뢰를 받게 된다. 반대편 벽에는 레오나르도다빈치의 그림이 있는 상황에 그는 흥미를 느꼈고 카시나 전투 장면의 밑그림을 그려냈다.

율리오 2세는 과시하기 위해 미켈란젤로에게 자신의 분묘를 만들어 달라고 작품 의뢰를 하게 된다. 숲처럼 둘러쌓여 있는 분묘를 만들 계획이었는데 미켈란젤로는 미완성으로 끝나게 된다. 미켈란젤로에게 푹 빠져 있던 교황을 바라만테가 산 사람의 묘를 짓는 것은 불길한 징조라며 꾀했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브라만테는 미켈란젤로를 곤경에 빠트리기 위해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을 장식하도록 의뢰했다. 그는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그림을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그림을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천장의 아치를 이용한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 생동감이 느껴진다. 이 후 로마로 다시 돌아가고 60대에 최후의 심판을 그리게 된다. 최후의 심판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교황의 궁무처장이었던 체세나의 얼굴이 괴상한 미노스 얼굴로 묘사되었다는 것이다.

나체 그림을 사사건건 간섭했던 궁무처장에게 그림으로 복수한 셈! 베드로는 그리스도께 열쇠를 건네고, 속죄하기 위해 생기없이 축 처진 얼굴 가죽으로 자신의 모습을 그린 미켈란젤로. 모든 이들에게 공개된 최후의 심판은 감탄과 충격을 주었다. 음란하고 부적절하단 이유로 미켈란젤로가 죽고 몇년 후 나체를 가리라는 명령이 내려지게 된다.

 

 

미켈란젤로의 조각상들은 전부 고통을 담고 있어서
조각상들 스스로가 부서지길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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